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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윤희상 - 꿈의 번역 - 목걸이를 만들고 팔찌를 만들고 반지를 만들었다 나무 그늘에 앉아 꿈을 말하는 것은 실로 구슬을 꿰면서 장식하는 일이다 그렇더라도, 꿈은 말이 아니다 꿈은 지금까지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꿈을 말하는 것은 욕망이다 그러니, 꿈이 있고 말로 만든 꿈이 있다 말이 꿈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대부분 감춘다 말로 만든 꿈은 꿈과 다른 말로 만든 꿈이다 꿈은 어쩌다가 그냥 쏟아지는 구슬이다 꿰매지지 않을 앞으로도 꿰매지지 않을 예쁜, 또는 슬픈 - 꿈의 언어 - 대부분 잊는다 그들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아득한 저편에서 손 닿을 듯 잡히지 않는 나만 홀로 동떨어진 다른 차원의 피조물 켜켜이 층이 내린 공간 안의 또 다른 그곳의 내 방은 내 방이 아니다 그 여자도 내 여자가 아니다 어머니도 어머니가 아니..
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 권대웅 - 착불(着拂) - 이 세상에 나는 착불로 왔다 누가 지불해주어야 하는데 아무도 없어서 내가 나를 지불해야 한다 삶은 매양 가벼운 순간이 없어서 당나귀 등짐을 지고 번지 없는 주소를 찾아야 했다 저녁이면 느닷없이 배달 오는 적막들 골목에 잠복한 불안 우체국 도장 날인처럼 쿵쿵 찍혀오는 살도록 선고유예 받은 날들 물건을 기다리는 간이역의 쪽잠 같은 꿈이 담벼락에 구겨 앉아 있다 꽃은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으로 이 세상에 온 대가를 지불하고 빗방울은 가문 그대 마음을 적시는 것으로 저의 몫을 다한다 생이여! 나는 얼마나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야 나를 지불할 수 있는가 얼마나 더 울어야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알 수 있을까 모든 날들은 착불로 온다 사랑도 죽음마저도 - 선불(先拂) - 내가 만약 선불이었..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서윤후 - 괴도 - 저 고개 숙인 자의 표정을 알고 싶다 코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어떤 찡그림을 발명했는지 그 찡그림을 펼치기 위해서 누군가는 반드시 떠나야 한다 마른 헝겊으로 안경을 닦을 때 초조하게 뒤돌아볼 때 앞은 잠시 앗아갈 것이 많아지는 세계 새장은 모란앵무를 찾으러 떠났다 흔들의자가 돌아오지 않았던 것처럼 그림자만 남겨지는 실내악 예열된 오븐 밑을 기어가는 벌레를 볼 때 밤새 얼마나 번성하게 될 것인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로 시작하거나 이젠 얼마 없는 이야기 고개를 들면 모자라게 된다 뜨개질처럼 멀고 먼 생활의 과로사를 시작하게 된다 어딘가 다친 모과들을 닮아 향기를 먼저 내밀게 된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게 된다 고개 숙인 자가 거느리는 밤 속에서 감긴 눈을 일으킬 슬픔이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