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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매혹 양진건 - 이름 - 미성이라는 애의 이름을 자꾸 미송이라고 헛갈리는 이유는 송, 송, 송할 때의 진동이 투명해서 그런 건지, 그 애 살 속에나 박혔음 직한 솔 나무 냄새 때문인 건지. 어떻든, 어떻게라도 부르면 샛길로 해서 내 귓전을 따스하게 하는 잰걸음으로 그 애는 내게 온다 - 의도 - 이유 없이 잘해주는 이를 조심하고 경계하라 일렀는데 이유 없이 잘해주고 싶은 이가 생겨서 내가 한 말을 주워 먹고 싶었다 그런 이들이 많아져서 약간은 친절하고 조금은 따뜻한 의도가 없는 것이 의도인
그늘의 발달 문태준 - 조금씩 자꾸 웃는 아이 - 들키지 않아도 살금살금 아무도 없는 부뚜막에서 장독대 낮은 항아리 곁에서 쪼그리고 앉아 토란잎에 춤추는 이슬처럼 생글생글 웃는 아이 비밀을 갖고 가 저곳서 혼자 조금씩 자꾸 웃는 아이 언제였던가, 간질간질하던 때가 고백을 하고 막 돌아서던 때가 소녀처럼, 샛말간 얼굴로 저곳서 나를 바라보던 생의 순간은 - 아이 - 지나간 시절에 영원히 물음표를 껴안고 언제였던가 순한 얼굴이 새파란 억울을 띄운 채 새빨개지도록 세상 떠나가라 눈물방울을 주렁주렁 마냥 좋았었다 그땐 그랬지 움켜쥐기엔 가시가 많아서 군데군데 상처를 입는 그래 그런 날도 있었지 하지만 시간이 좋은 게 무언 줄 아나 해상도가 떨어져 구석구석 낡아 헤지면 한낱 잿가루로 쉬이 보내줄 수 있다는 점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 희음 - 어루만지는 높이 - 계단을 오른다 멀어지는 머리를 세고 차가운 난간을 쓰다듬고 심장처럼 자신의 무게를 가늠하는 너무 익은 감처럼 계단을 오르며 내려다보면 내일이 오늘을 밀어내는 것이 하나가 하나를 어루만지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어루만지는 시간은 맥박과 맥박 사이에도 있어 숨죽이지 않고도 나는 이토록 고요해져서 바람이 내는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조금씩만 밀어내기로 한다 무른 과일을 씻으며 발끝에 힘을 준다 소리를 불러낸다는 건 바람이 지은 계단을 당겨 오는 것 그것은 한없이 말랑하고 깊어 계단에 맞춰 흥얼거리며 나는 없는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고 - 소우주 - 가장 먼저 눈에 띈 책과 만년필 노트북과 물티슈 손목 보호대와 면봉 코스모스의 안에서 티끌에 불과할 책 거치대 인덱스 인공눈물 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