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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이규리 - 껍질째 먹는 사과 - 껍질째 먹을 수 있다는데도 사과 한입 깨물 때 의심과 불안이 먼저 씹힌다 주로 가까이서 그랬다 보이지도 않는 무엇이 묻었다는 건지 명랑한 말에도 자꾸 껍질이 생기고 솔직한 표정에도 독을 발라 읽곤 했다 그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전례가 그렇다는 거 사과가 생길 때부터 독이 함께 있었다는 얘기 이거 비밀인데,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 목에 탁 걸리는 이런 말의 껍질도 있지만 중심이 밀고 나와 껍질이 되었다면 껍질이 사과를 완성한 셈인데 껍질에 묻어 있는 의심 이미 우리가 먹어온 달콤한 불안 알고 보면 의심도 안심의 한 방편이었을까 - 발견 - 지나침의 맛을 알아낸 양반 치우침 없는 난을 치다가 선의 끝에 묵직한 먹을 새기고 돌이킬 수 없어졌네 죄 돌이킬 수 없어
희다 이향 - 한순간 - 잠시 눈감았다 뜨면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 어제저녁 붉게 노을 졌던 태양의 한때처럼 오늘아침 초록으로 흔들리는 잎의 한때처럼 한순간이란 붙잡아두고 싶은 것이어서 새벽마다 물방울이 맺히는 것일까 물방울 같은 한순간 그 물방울만한 힘이 나뭇가지를 휘게 하는지 그때 붙잡고 싶었던 것은 네가 아닌 그 순간이었다 당신도 그렇게 왔다 가는 걸까 어느 순간 기척 없이 빠져나간 손바닥의 온기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의 그늘처럼, 이미 예정된 한순간 속의 우리들 - 전부 - 이게 참 슬프다 누구에겐 일순간이 상대적으로 나에게만 영원처럼 느껴지는 모든 것들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김이강 - 12월주의자들 - 사실 나는 좀더 버릇없이 살고 싶어요 지금보다도 더 예의 없이 살고 싶어요 포도를 씻으면서 계속 생각한 거예요 그런 게 멋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하죠 지금보다 훨씬 더 예의를 차리곤 하죠 그건 내 콤플렉스예요 컴플렉스라고 분명히 썼는데 콤플렉스로 바뀌는 한글 파일의 콤플렉스처럼 말이에요 오늘 이 글은 손으로 썼지만 옮기면서는 다른 글이 되어버리고 마는 콤플렉스예요 음악가가 되려고 했어요 한번쯤 그럴 수도 있잖아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들처럼 내가 아무것도 아닌 적이 있을까요 당신의 음악을 사랑해요 아무것도 아닌 때에도 음악은 음악이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후에도 아무런 연관성 없이 콤플렉스처럼 일어났어요 이런 건 다 콤플렉스예요 노트에는 컴플렉스라고 썼는데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