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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 시싸우기

꽃의 고요 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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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를 깨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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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옥탑에서 책들 앞에 촘촘히 서서 살다가

책 뒤질 때 와르르 방바닥에 내리꽂힌 CD들

아 슈베르트 얼굴이나 이름이 적힌 판들.

이 한세상 살며 그래도 마음에 새길 것은

슈베르트, 고흐와 함께 보낸 시간에

새겨진 무늬들이라 생각하며 여태 견뎌왔는데.

껍질만 깨지지 않고 혹 속까지 상한 놈은 없는가

며칠 동안 깨진 사연을 하나씩 들어본다.

아니, 사연마저 깨진 맑음이다.

이틀 만에 듣는 폴리니가 두드리는 마지막 소나타는

맑음이 소리의 물결을 군데군데 지워

몇 번이나 건너뛰며 간신히 흘러간다.

뛸 때마다 마음도 건너뛰려다 간신히 멈춘다.

슈베르트여, 몸 뒤척이지 말라.

가만히 둘러보면 인간은 기실

간신히 깨지지 않고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시방 같은 봄 저녁

황혼이 어둠에 막 몸 내주기 전 어느 일순(一瞬)

홀린 듯 물기 맺힌 눈 아니고는 제대로 쳐다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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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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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름답다 느꼈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요

글쎄다 나는

또 이런다

예쁜 걸 보고 예쁘다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

말하기가 부끄러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