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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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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벤치에 앉아
겨울 냄새를 맡고 있는 너와 나는
순간 스친 이 냄새에
말을 잃고 깊이 넓어져만 가는 너와 나는
너의 손을 잡지 못하는 나와
내 깊은 곳으로 흘러들어오는 너는
바람처럼 스산하고
공기처럼 맑아
떨어지며 정지하여
영원히 정지해버린 너는
그림처럼 아름답고
기억처럼 참담하여
내가 너의 아버지이기를 바라고
네가 나의 어머니이기를 바라는 너는
여기 추운 나무들이 서 있는 벤치에 앉아
희망한다.
한 아이가 다른 한 아이의 친구가 되지 말기를
한 여자가 한 남자의 애인이 되지 말기를
그래서
맑은 하늘과 비어 있는 거리
멈춰 선 버스와 흘러가는 시간 사이로
너의 두 눈은 그림처럼 아름다워
겨울 냄새를 풍기고
겨울의 하늘 속으로 멀어져
내가 빠져든 우물,
거울이 된다.
_이철성, 『식탁 위의 얼굴들』(21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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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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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를 쓰자
불타오르는 사랑
침몰하는 사랑
녹아내리는 사랑
승천하는 사랑
사랑 없이 살 수 있다고
큰소리 뻥뻥 쳤던 것치곤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순 거짓말쟁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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