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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 시싸우기

못 속에는 못 속이는 이야기 김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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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는 있고 우리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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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은 있고 건물은 있고 간판은 있고 그늘은 있고 햇살은 있고 외면은 있고 예감은 있고 바깥은 초가을 청청한 숨이 도는데 바람은 없고 창은 없고 물기는 없고 계절은 없고 기척은 없고 축복은 없고 성급히 눈 감긴 영혼들을 가만히 흔들면 층층이 우르르 내가 깨어나는데 악몽은 있고 허기는 있고 통증은 있고 치욕은 있고 진창은 있고 끝장은 있고 옥상은 있고 아침은 없고 무사는 없고 비명은 없고 문은 없고 신발은 없고 이름은 없고 유언은 없고 정령은 없고 예외는 없고 무서워 너무 무거워 불가능한 울음을 삼키며 이제 우리 어디로 가나요, 물을 때 어디는 있고 우리는 없고 개미들은 아직 다리를 떠는 어린 여치 위로 부지런히 흙을 물어다 덮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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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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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과 없음 사이 뚜렷한 경계 없이 아니 경계 있이 시인들의 말을 옮겨 적다 나는 깨달음을 불현듯 아니 감각이 없으니 느낌은 느낌이라 할 수 있을까 없음에 대해 말할 수 있음은 없음이 있음으로 반전되는 무한한 상상 속에 오늘은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말해 보자 주머니가 있는 청바지, 고양이를 닮은 강아지, 연필이 든 필통, 나의 생각을 정리한 노트, 그 외에 사랑하는 모든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