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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 시싸우기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백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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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질문
비밀과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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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서 출렁이는 물을 만났어 몰캉몰캉한 젤리들이 눈속으로 가득 쏟아졌어 이렇게 고요한 밤에 어떻게 나는 숨을 쉬고 말을 할 수 있을까 불속에서 녹아내리는 몸 줄곧 가지고 다닌 비밀과 질문 정말이라면 그것이 정말이라면 물은 까맣고 까만 것은 무한하기에……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을 비밀과 질문이라고 한다면 너무나 쉽고 가벼워지는 그것을 어쩔 줄 모르고 공중에 놓여 있던 두 손이라 부를 수 있다면 주머니가 있어 손을 감출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은 형상을 바꾸며 나아갔고 나아가며 멈춰 있었고 물무늬가 그리는 파동이 겹겹이 흔들리며 얼굴을 짓뭉개놓는 동안 울면서 울면서 달리고 달리는 커다란 기차를 생각했어 기차를 끌어당기는 은빛 선로에 대해 생각했어 그 안에 가득찬 빼곡한 숨을 숨찬 주문을 들으며 들으며 귓속으로 쏟아지는 계속되는 것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순환의 지독함과 아름다움을 액자 속에 걸려 천 년 동안 서서히 밝아지는 동시에 스러지는 이미지를 떠올렸어 그것을 온전한 절망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은 없기에 책 속에 머리를 박고 활자를 중얼거리며 기차가 달리는 리듬으로 한 문단 한 문단 달리고 달리며 비밀과 질문 비밀과 질문 출렁이는 물속을 들여다보려 애를 썼고 아무리 애를 써도 보이지 않는 심장처럼 물은 검기만 했고 숨찬 내일 무한을 잠시 엿본 것만 같다고 꽃이 꽃꽃꽃꽃 달리고 달이 달달달달 떨리고 숲이 숲숲숲숲 웃어대는 리듬 속에서 숨찬 내일 두 손을 휘저으며 끝없이 두 손을 휘저으며 이렇게 시끄러운 밤 어떻게 너는 꿈을 꾸고 잠을 자는가 그것이 정말인가 무엇을 향하는지도 모르고 삿대질을 하며 울던 줄곧 가지고 다닌 두 손

 손목을 은빛 선로 위에 둔 채 기다리고 있다 기적이 가까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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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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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니래

아니래

왜 아니래

아니래

 

그거 아니래

 

아닌게 뭔데

아니래

 

내가 아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