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쓰기, 시싸우기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이병률

-

오시는 마을

-

 

새로 지은 마을로 사람들이 이사를 합니다

마을 입구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생각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둥근 마을의 경계에는 화살나무를 둘러 심고

유성이 도착하도록 꽃밭을 파놓습니다

상자에 담아온 시간들은 천천히 씻겨도 좋을 것입니다

 

어느 저녁

마을에 들어온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합니다

분수대를 가운데 둔 듯 동그랗게 모여 앉았습니다

 

소개는 즉흥적이며 아무도 질문하지 않습니다

 

데인 자국을 이야기하는 사람

물에 휩쓸린 기억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두 바퀴의 소개가 돌았지만

자신의 깊숙한 곳까지를 소개하느라

생각의 면적을 줄이기 위해

계절을 하나로 통일시키자는 안건은 모두 잊은 듯합니다

 

함부로 내일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무서워할 것들을 수군대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여전히 둥글게 좁혀 앉은 자리에 자루가 놓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자루를 뒤집어쓰고

오래 사랑할 것입니다

신이 그들을 따를 것입니다

 

소개의 순서가 다 끝났지만

처음 자기소개를 시작한 사람이 다시 자기소개를 시작합니다

계속해서 자기소개를 하느라 밤이 포개집니다

 


-

단수

-

 

단수는 완전하지 않아서

물을 잔뜩 받아놨는데

충분할지 모르겠다

 

유일한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외로움은 또 어떻게 정의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