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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공을 두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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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두 발로 축구공을 차며
한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빨며 간다
나는 비어 있는 두 발로 빠르게 걸으며
아이의 공기를 빼앗아 먹는다
아이는 발에서 머리로 공을 가볍게 차올린다
헤딩을 하며 구름을 뜯어와서 먹는다
아이가 제 두 손으로 목을 비틀어 머리를 떼어낸다
머리를 툭툭 차며 간다
아이는 원색이다
몸을 동쪽으로 잔뜩 웅크린다
어느 곳으로나 접속하고 싶은 나도
아이가 두고 간 길과 공을 대신 차며 간다
아직도 권력과 지구는 공처럼 둥글고
골목에 담기는 모든 것들의 콘센트가 집이다
아이는 어느 집 앞에 멈추어 서더니
머리를 툭툭 털어 목에 다시 갖다 끼운다
돌아보는 아이의 얼굴에 구름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하늘은 가로등을 핥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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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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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씩
들락날락
나도 모르게 찾아온
손님
마중 없이 차가운 물
한 대접하니
그새 눌러앉아
집안을 거덜 내는데
부른 적 없는데
누굴 찾아왔니
그야 만만한 놈
약해빠진 놈
정신머리에
빈자리가 많은 놈
그만
돌아가 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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