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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 시싸우기

거미는 이제 영영 돼지를 만나지 못한다 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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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토폴 거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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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이 돌아가면서 인형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은밀한 회상 속으로 나는 끌려 들어갔다

 

바이올린은 높은 도에서 온종일 떨었고

 

흰 머리칼 휘날리며 빨간 눈을 치켜뜨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두근두근

 

저주해, 사랑해, 저주해……

 

끝없음과 끝없음이 지상을 스쳐 잠시 만날 때

 

빛이 끌어내는 색깔의 형식으로 신음하는 사물들

 

어둠 속에 뿌리내린 식물들의 신성한 마비와

 

심연 위에 펼쳐지는 미로의 얼굴, 얼굴들

 

우리는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법은 알지만

 

그 끝이 무언지 결코 모르지 않던가?

 

시를 읽으면, 앉은뱅이 벌떡 일어나고

 

시를 읽으면, 광인이 맑은 눈빛으로 엉엉 울고

 

시를 읽으면, 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나, 일곱 원소로 분해되어 이렇게

 

당신 눈꺼풀에 매달려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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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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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에 빠져 몸서리치던 질식의 날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