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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 시싸우기

한 문장 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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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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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것과 싸워야 한다. 문밖에 있는 저것과 싸워야 한다. 보이지 않는 저것과도 싸워야 한다. 내 발밑에 있는 이것과도 싸워야 하듯이 저것이 있다. 저것은 하나가 아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저것과 싸워야 한다. 저것은 문밖에 있다. 문밖에서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저것의 형상과 싸워야 한다. 저것의 자세와 기질과 알 수 없는 예정과 싸워야 한다. 저것은 문을 두드리고 들어온다. 저것은 문을 열어젖히면서 들어온다. 저것은 들어오지 않고서도 들어와서 있는 것처럼 있다. 저것은 저것대로 괴롭다. 저것은 저것대로 외롭다고 있다. 저것은 저것대로 사람이 아니다. 저것은 저것대로 할 말이 있다. 저것은 저것대로 답답한 저것을 견디고 있다. 저것은 저것대로 견디고 있는 저것을 나한테만 전가하지 않기를 바라는 저것이란 것을 도무지 모른다. 저것은 저것이다. 저것은 저것대로 힘들다. 저것은 저것대로 언제 문을 열고 들어올지 모른다. 저것이 나를 신경 쓰이게 한다. 저것이 나를 방해하고 있다. 저것을 죽여라. 저것의 생각을 죽이려고 살고 있다. 살기 위해서 죽이고 있는 것. 저것이 있다. 저것과 있다. 저것과 살려고 저것을 맞추고 있다. 저것과 맞추고 있고 저것과 맞추지 못해 저것이 있고 여전히 있고 앞으로도 있고 언제라도 있는 저것을 퍽이나 부담스러워하면서 저것을 사랑한다. 저것은 살려고 있다. 저것과 살려고 있다. 저것을 싫어하는데 저것이 좋단다. 좋다는 말도 좋단다. 싫다는 말도 좋다는 저것은 저것대로 논리가 아니다. 이상하게 꿰어 맞춘 감동도 아니다. 느닷없이 예정된 충격도 아니다. 저것은 아니다. 저것이 아니라면 저것대로 아니다. 저것대로 저것은 사물이고 물건이고 이상하다. 내가 손댈 수 없는 물건은 내가 손댈 수 없는 자리에서 저것이다. 이상하고 수상하고 꽤 저것답게 있다. 꽤 저것답게 늙어간다. 꽤 저것답게 들어와서 있다. 저것을 넣으려고 얼마나 많은 저것을 허비했는가. 얼마나 많은 저것을 데려와서 방치했는가. 저것은 있다. 변하려고 있고 상하려고 있다. 죽지도 않고 있다. 저것이 있다. 내가 죽고 나서야 저것이 없다는 사실이 변함없이 있다. 얼마든지 있다. 앞으로도 있고 죽어서도 있다. 저것이 문을 꽝 닫고 나가는 순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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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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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와 싸워야 한다. 문밖에 있는 너와 싸워야 한다. 보이지 않는 너와도 싸워야 한다. 내 발밑에 있는 이와도 싸워야 하듯이 너가 있다. 너는 하나가 아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너와 싸워야 한다. 너는 문밖에 있다. 문밖에서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너의 형상과 싸워야 한다. 너의 자세와 기질과 알 수 없는 예정과 싸워야 한다. 너는 문을 두드리고 들어온다. 너는 문을 열어젖히면서 들어온다. 너는 들어오지 않고서도 들어와서 있는 것처럼 있다. 너는 너대로 괴롭다. 너는 너대로 외롭다고 있다. 너는 너대로 사람이 아니다. 너는 너대로 할 말이 있다. 너는 너대로 답답한 너를 견디고 있다. 너는 너대로 견디고 있는 너를 나한테만 전가하지 않기를 바라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 너는 너다. 너는 너대로 힘들다. 너는 너대로 언제 문을 열고 들어올지 모른다. 너는 나를 신경 쓰이게 한다. 너는 나를 방해하고 있다. 너를 죽여라. 너의 생각을 죽이려고 살고 있다. 살기 위해서 죽이고 있는 것. 너가 있다. 너와 있다. 너와 살려고 너를 맞추고 있다. 너와 맞추고 있고 너와 맞추지 못해 너가 있고 여전히 있고 앞으로도 있고 언제라도 있는 너를 퍽이나 부담스러워하면서 너를 사랑한다. 너는 살려고 있다. 너와 살려고 있다. 너를 싫어하는데 너가 좋단다. 좋다는 말도 좋단다. 싫다는 말도 좋다는 너는 너대로 논리가 아니다. 너대로 너는 사물이고 물건이고 이상하다. 내가 손댈 수 없는 자리에서 너다. 이상하고 수상하고 꽤 너답게 있다. 꽤 너답게 늙어간다. 꽤 너답게 들어와서 있다. 너를 넣으려고 얼마나 많은 너를 허비했는가. 얼마나 많은 너를 데려와서 방치했는가. 너는 있다. 변하려고 있고 상하려고 있다. 죽지도 않고 있다. 너가 있다. 내가 죽고 나서야 너가 없다는 사실이 변함없이 있다. 얼마든지 있다. 앞으로도 있고 죽어서도 있다. 너가 문을 꽝 닫고 나가는 순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