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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 시싸우기

후르츠 캔디 버스 박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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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르츠 캔디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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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버스에 오른다

텅 빈 버스의 출렁임을 따라 창은 열리고

3월의 벌써 익은 햇빛이 전해오던

구름의 모양, 바람의 온도

당신은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던 타인이어서

낯선 정류장의 문이 열릴 때마다 눈빛을 건네보지만

가로수와 가로수의 배웅 사이 내가 남기고 가는 건

닿지 않는 속삭임들뿐

 

하여 보았을까 한참 버스를 쫓아오다

공기 속으로 스며드는

하얀 꽃가루, 다음엔 오후 두시의 햇빛,

그사이에 잠깐 당신

한 번도 그리워해본 적 없는 당신

내 입술 밖으로 잠시 불러보는데

그때마다 버스는 자꾸만 흔들려 들썩이고

투둑투둑 아직 얼어 있던 땅속이

바퀴에 눌리고 이리저리 터져 물러지는 소리

 

무슨 힘일까

당신은 홀린 듯 닫힌 가방을 열고

오래 감추어둔 둥글고 단단한 캔디 상자를 꺼내네

내 손바닥 위에 캔디를 올려놓을 때

떠오르던 의문과 돌아봄, 망설임까지

 

어느덧 그것들이 단맛에 녹아 버스 안을 채워나갈 때

오래전에 알았던 당신과 나, 단단한 세상은 여전하지만

시작도 끝도 없고 윤곽마저 불투명하던 당신에게

아주 잠깐, 속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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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사랑

-

 

너는 너무 티가 나

누가 보면 아는 사람인 줄 알겠어

그렇게 보는데

내가 어떻게 모르니

모른 척 창유리 너머에 시선을 두는 나도

웃겨

 

날씨가 좋더라

캐빈디쉬하비 체리를 먹었어

그대로 가방에 넣으려 했는데

뭘 또 그렇게 똥강아지처럼 쳐다보니

옜다

 

착각은 하지 말아 줘

우린 그냥,

같은 맛을 공유한 사이일 뿐이야

 

버스에서 내렸는데

하얀 설탕 가루가

손에 남았어

 

그것도 모르고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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