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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 시싸우기

메롱메롱 은주 김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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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 피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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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너의 문간에 이르지 못했으니

이곳에서 그냥 밤을 새우고 말리라

오늘 하루 얼마나 걸었을까

지는 해의 부르튼 발바닥이 보여

문을 잠근 그대여

너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을 테지

이 길의 두근거림

가도 가도 계속되는 흰 꽃들의 속삭임

가만히 주저앉아 쓰다듬어보면

종일 햇볕이 데우지 않았어도

수많은 발길로 뜨거워진 길

긴 가뭄에도 땅속으로 뻗는 저 알알의 힘

너는 아직 모르고 있을 테지

간간이 한 줌의 굴욕

한 줌의 신산한 기억들도

흰 감자꽃 속에 널브러져 있지만

길을 따라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들

너는 아직 손잡아보지 못했을 테지

문을 잠근 그대여 나는 아네

언젠가 내가 너의 문간에 이르렀을 때

너무 단단히는 잠그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삐걱거려주리라는 것을

끝끝내 열리지 않아 그곳에 나의 무덤을 짓더라도

아주 희망이 없지는 않게

너의 숨결엔 듯 흔들리며 삐걱거려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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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삐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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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 올려둔 손목이

음악 감상한답시고 고개는

자리를 비우고 일어서면 등허리가

질리지도 않게

너를 볼 때도 매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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