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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 피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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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너의 문간에 이르지 못했으니
이곳에서 그냥 밤을 새우고 말리라
오늘 하루 얼마나 걸었을까
지는 해의 부르튼 발바닥이 보여
문을 잠근 그대여
너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을 테지
이 길의 두근거림
가도 가도 계속되는 흰 꽃들의 속삭임
가만히 주저앉아 쓰다듬어보면
종일 햇볕이 데우지 않았어도
수많은 발길로 뜨거워진 길
긴 가뭄에도 땅속으로 뻗는 저 알알의 힘
너는 아직 모르고 있을 테지
간간이 한 줌의 굴욕
한 줌의 신산한 기억들도
흰 감자꽃 속에 널브러져 있지만
길을 따라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들
너는 아직 손잡아보지 못했을 테지
문을 잠근 그대여 나는 아네
언젠가 내가 너의 문간에 이르렀을 때
너무 단단히는 잠그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삐걱거려주리라는 것을
끝끝내 열리지 않아 그곳에 나의 무덤을 짓더라도
아주 희망이 없지는 않게
너의 숨결엔 듯 흔들리며 삐걱거려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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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삐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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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 올려둔 손목이
음악 감상한답시고 고개는
자리를 비우고 일어서면 등허리가
질리지도 않게
너를 볼 때도 매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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