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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 시싸우기

오늘 아침 단어 유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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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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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린 말 위에는 이파리 돋아나 흔들리고 꽃을 찾아내 피워 올리다가 지나가는 사람의 아래, 툭 던지기도 하다 바람이 불고 피가 놀고 거리에 찾아가 한없이 등지고 서 있다가 문득 돌아서는 버린 말 위에는 친구가 찾아오기도 하다 엿보는 사람들이 있고 애써 뒤적이는 사람들도 있고 좁은 길목으로 들어서고 그림자를 날름대기도 하는 그럴 땐 몰래 아프기도 하다 아니오와 예 사이를 끈기 있게 망설이는 사람이 있으면 어깨를 툭 치고 직장으로 돌아가는 사무원처럼 춥기만 하기도 하다 꿈이 너무 많은 아이처럼 복도를 지나가며 어떤 소리를, 추억을 불러일으킬 괴음을, 그렇지만 쓸모없지만은 않은, 그런 소리를 흉내 내는 것이 있고 애써 모른 척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지 않았는지 망설이는 버린 말은 인파를 향해 나 있는 테라스에도 앉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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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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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지나가듯 흘린 말도 쉽게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고 싶어요 아픔이 많아서 힘이 들 때면 땅에 떨어진 말들을 말없이 주워가며 돌아오지 않는 말도 말하지 않아도 전부 알고 싶어요 기다리는 말에 상처입지 않고 싶어요 기대하지 않으려 애써도 기대가 되는 부푼 마음도 주워 보관하고 싶어요 때로는 말을 주워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차가운 말을 따뜻하게 덥혀 돌려주고 싶어요 그렇게 주위의 모든 사랑하는 말들을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스럽게 기억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