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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 시싸우기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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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처럼 잠드는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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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있는 나무는 마루가 될 수 있다고 간호조무사 총정리 문제집을 베고 누운 미인이 말했다 마루는 걷고 싶은 결을 가졌고 나는 두세 시간 푹 끓은 백숙 자세로 엎드려 미인을 생각하느라 무릎이 아팠다

 

어제는 책을 읽다 끌어안고 같이 죽고 싶은 글귀를 발견했다 대화의 수준을 떨어뜨렸던 어느 오전 같은 사랑이 마룻바닥에 누워 있다

 

미인은 식당에서 다른 손님을 주인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는 손발이 뜨겁다 미인의 솜털은 어린 별 모양을 하고 나는 손발이 뜨겁다 미인은 밥을 먹다가도 꿈결인 양 씻은 봄날의 하늘로 번지고 나는 손발이 뜨겁다

 

미인을 생각하다 잠드는 봄날, 설핏 잠이 깰 때마다 나는 몸을 굴려 모아둔 열(熱)들을 피하다가 언제 받은 적 있는 편지 같은 한기를 느끼며 깨어나기도 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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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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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모든 열들을

온몸으로 맞이했다

 

치솟는 온도에 불감(不感)한 채

가만히 그러고 있자니

 

내가

자체가 된 듯하다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나

이 한 몸 다해

끌어안아버렸다

 

나는 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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