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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 시싸우기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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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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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비행기의 유일한 승객이자 조종사, 잠과 잠을 끝없이 이어 붙인 밤의 상공을 날아갑니다 조종사의 첫번째 자질은 어둠의 리듬을 타는 일이라고 엄마는 말했지요 불쑥불쑥 솟은 꿈의 허들을 넘을 때마다 부드럽게 출렁이는 잠 나는 유리 조각을 쥐고 둥글게 몸을 웅크립니다
 
 발가락이 생겼습니다 우주를 떠돌던 목동은 기르던 양을 잃고 탯줄로 목을 감았다지요 나는 눈을 감고 촛농이 흘러내리는 소리를 들어요 조종사의 두번째 자질은 아름다운 귀를 갖는 일 나는 귓속에 작은 귀를 감추어 들리지 않는 음악을 채집하죠 더 먼 캄캄함을 향해 방향을 틀어요 눈꺼풀 위로 칼날 같은 꽃잎이 쏟아지고
 
 날마다 비행 일지를 써내려갑니다 계기판을 믿지 않은지는 오래되었어요 흔들리거나 뒤집히는 재미 도착하지 않는 동안에만 여행이니까요 언제나 열렬하게 파닥일 것 손금을 바꾸려던 바람의 유언을 따라 소금으로 뒤덮인 행성을 통과합니다 깊은 목마름의 힘으로 솟아오르는 나무가 있어요 온몸 가득 붉은 심장을 걸기 위해
 
 뜨겁게 고여 있는 나의 우주 어둠은 내가 배운 최초의 단어입니다 비행기 창문이 열리지 않는 이유가 궁금한가요 잊히지 않는 비밀이 되려고 벽 안으로 몸을 밀어넣는 새들이 궁금한가요 오늘도 엄마는 청진기를 대고 나의 비행을 엿듣습니다 얼굴은 목에서 피어오른 단 하나의 꽃, 나는 그 꽃을 피워올리려고 힘찬 발길질을 시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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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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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꾸었어요 밤하늘에 뜬 위성이 내가 사는 집이었는데 그곳은 평면과도 같아서 땅인지 모를 것에 나는 발을 딛고 있었고 잠시 헛디뎌 휘청이고 보니 어느새 물 위를 걷고
 
 눈을 깜박이는 사이 다시 잠이 들었어요 꿈속에서의 잠은 길고 길어서 마치 자는 게 당연한 일인 것처럼 꿈이 곧 깨어있음이고 잠은 숨 쉬는 일의 다른 말이 되어서
 
 언젠가 기린이 되고 싶다는 말을 주워섬기며 그들은 힘이 세고 이 땅 위에 군림해 대부분의 육식 동물과 싸워 이길 수 있음을 내가 기린이라도 되는 듯 자랑스레 떠들며
 
 모든 일을 뒤로하고 눈을 뜨면 기억은 섬세한 휴지 조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