盛夏(성하-한여름) + 下雨(하우-비가 내리다). 오늘 같은 날을 표현한다고 짜집기했지만, 참 궁색하구나. 이런 날에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소리 - 아스팔트 바닥에든지, 통유리창에든지, 차지붕에든지, 포장 머리에든지 - 를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주종을 불문하고) '술' 한 잔하고 싶구나 생각하는 나도 지금 처지가 참 궁색하다. 이렇게 궁색한 나는 많은 것들이 그립다. 특히, 이런 날이면.
'이중성'이라는 일본 문화의 핵심을 이해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고전으로 추천되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읽어 보았다. 도대체 이 책은 일본에 대해서 무어라 하기에 한 나라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가 고전으로까지 칭송되는가 궁금했다. 게다가 그 대상은 우리를 식민지배한 적이 있는 바로 옆의 '일본'이라는 나라가 아닌가. 서문에 보면 이 책은 일본의 패전 이후 미군정의 체계를 잡기 위한 연구서로 쓰여졌다. 서양인의 정상적인 사고로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꺽일 것 같지 않은 잔혹한 호전성이 그것의 정반대의 극단에 있을 법한 완벽한 전향에 이은 절대적 순종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런 불가해한 민족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점령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미군정의 관심사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일본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다. 루스 베네딕트가 이러한 임무를 맡게 되었고, 이 책이 고전으로 남은 것이 증명하듯 그녀는 본인의 임무를 훌룡하게 완수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이웃나라 일본 좀 알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것은 이것이 일본에 대한 연구서인지 한국에 대한 보고서인지 모르겠다는 당혹감이었다. 저자가 지목하는 일본의 문화적 특성은 (내 생각으로는) 거의 완벽하게 한국적인 것 같이 느껴졌다. 끝까지 이런 멍청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는데, 다행히도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책의 말미에 이광규의 해설을 보면, "처음 <국화와 칼>을 읽으면 일본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고 두 번 읽었을 때쯤에야 비로소 일본과 우리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글맛이 익숙치 않아서 내용을 군데 군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서,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꼭' 다시 읽어야만 하는 책인가 보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내가 한 번 밖에 읽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나는 이 책이 '한국'에 대해 씌여졌다고 해도 믿을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그 때의 '일본'과 지금의 '한국'이 동일한 문화적 영역에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는데, 과거 식민 지배의 역사와 그것들의 유무형적 계승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결론지어보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젠장할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읽으면 둘이 같진 않다고 하니 나중에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언젠가 일본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일본인은 '죄의식'이 없고, '수치심'만 있다고 비판한 글을 본 적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대동아전쟁의 결과에 대한 일본의 사죄는 진정성이 없다고 했던 것 같다. 비슷하게, 이 책에서도 일본의 문화가 '죄의식'보다는 '수치심'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인은 죄의 중대성보다도 수치의 중대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참다운 죄의 문화가 내면적인 죄의 자각에 의거하여 선행을 행하는 데 비해, 참다운 수치의 문화는 외면적 강제력에 의거하여 선행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도 그러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한 때, 소중화라고 주장할 만큼 유학적 전통을 계승했다는 조선의 후손들은 '마음에 거리낌없고 부끄럽지 않은' 일보다는 '남들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일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고 확신한다. 나도 역시. 주忠, 고孝, 마코토誠實니 기리義理니 하는 것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익숙한 개념들이다. '국화'와 '칼'은 일본의 대립하는 이중성에 대한 상징들이다. 국화 = 심미적 감수성 vs. 칼 = 호전성, 이것을 일본인들의 인정에 대한 자유분방함과 칼의 녹에 대한 단호함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라나? 국화 = 자유분방한 인정 vs. 칼 = 지극정성의 마코토. 아님 당연히 이건가? ㅡ.ㅡ;;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것은 이것이 일본에 대한 연구서인지 한국에 대한 보고서인지 모르겠다는 당혹감이었다. 저자가 지목하는 일본의 문화적 특성은 (내 생각으로는) 거의 완벽하게 한국적인 것 같이 느껴졌다. 끝까지 이런 멍청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는데, 다행히도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책의 말미에 이광규의 해설을 보면, "처음 <국화와 칼>을 읽으면 일본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고 두 번 읽었을 때쯤에야 비로소 일본과 우리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글맛이 익숙치 않아서 내용을 군데 군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서,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꼭' 다시 읽어야만 하는 책인가 보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내가 한 번 밖에 읽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나는 이 책이 '한국'에 대해 씌여졌다고 해도 믿을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그 때의 '일본'과 지금의 '한국'이 동일한 문화적 영역에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는데, 과거 식민 지배의 역사와 그것들의 유무형적 계승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결론지어보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젠장할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읽으면 둘이 같진 않다고 하니 나중에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언젠가 일본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일본인은 '죄의식'이 없고, '수치심'만 있다고 비판한 글을 본 적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대동아전쟁의 결과에 대한 일본의 사죄는 진정성이 없다고 했던 것 같다. 비슷하게, 이 책에서도 일본의 문화가 '죄의식'보다는 '수치심'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인은 죄의 중대성보다도 수치의 중대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참다운 죄의 문화가 내면적인 죄의 자각에 의거하여 선행을 행하는 데 비해, 참다운 수치의 문화는 외면적 강제력에 의거하여 선행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도 그러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한 때, 소중화라고 주장할 만큼 유학적 전통을 계승했다는 조선의 후손들은 '마음에 거리낌없고 부끄럽지 않은' 일보다는 '남들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일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고 확신한다. 나도 역시. 주忠, 고孝, 마코토誠實니 기리義理니 하는 것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익숙한 개념들이다. '국화'와 '칼'은 일본의 대립하는 이중성에 대한 상징들이다. 국화 = 심미적 감수성 vs. 칼 = 호전성, 이것을 일본인들의 인정에 대한 자유분방함과 칼의 녹에 대한 단호함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라나? 국화 = 자유분방한 인정 vs. 칼 = 지극정성의 마코토. 아님 당연히 이건가? ㅡ.ㅡ;;
"발칙한 글쟁이의 의외로 훈훈한 여행기"라는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을 읽었다. 빌 브라이슨이라는 작가를 알게 해준 책으로, '나를 부르는 숲'을 보증인으로 한다면, 충분히 재밌는 책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충분히 타당했다고 생각한다. '유쾌하다'는 표현이 적확한 작가와 그에 걸맞는 여행기라고 하면 될까? 도대체 까칠하기 짝이 없는 이 아저씨는 유럽을 휘젓고 다니며 온갖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어느 도시도 빌 브라이슨의 눈에는 오점 투성이이고, 그를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때때로 왜 비맞은 중처럼 구시렁거리면서까지 여행을 하는지 의아할 정도로 유럽의 도시의 곳곳은 빌 브라이슨에게 태클을 걸어온다. 뭐 그렇담 브라이슨씨의 대답은 구시렁거리며 씹는 그 맛 때문에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노골적으로 불만을 털어놓고, 비꼬고, 과도하게 엄살을 떨고, 너스레를 떨며 관용있는 척하는 그의 모든 표현들은 그가 아주 맛나게 도시들을 씹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어느 페이지를 펴더라도 이런 표현이 나오지 않는 곳은 없다. 지금 바로 대충 펼쳐보아도, "1960-70년대의 건축물을 보면 당시의 건설업체와 건축가들이 대체 얼마나 몹쓸 정신병을 앓았기에 아름다운 유럽을 이 꼴로 만들어놨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나는 항구 주변에 있는 이동식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이걸 먹고 나면 평생 몸져눕게 되는 건 아닌가 미심쩍은 햄버거", "할머니가 틀니를 찾을 수 없을 때나 드실 것 같은 음식",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막간극도 포함하기에 과거를 간직하려는 이들의 습성이 매력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술까지 취한 미친놈을 태웠다는 확신이 들어 운전사가 나를 밖으로 밀어버려야겠다고 결심하는 찰나" 등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이보다 더한 표현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그의 불평불만의 행간에서 오점 투성이 도시들에 대한 훈훈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출판사의 홍보 문구를 너무 노골적으로 따라하는 것인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이 사람은 칭찬을 할 때도 있다. "국가가 어떤 대가를 감수하더라도 이런 문제에 대해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공정하게 헌신한다는 점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빌 브라이슨의 글을 읽는 재미가 그의 표현에만 있는 것은 확실히 아니다. 재미의 또 다른 한 축은 그의 박식함이 아닐까 한다. 티내지 않으면서도 그의 '정직한' 표현에 정당성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그의 박심함이 아닐까. 어쨌든 유쾌하고 재밌다. '여행이란 어차피 집으로 향하는 길이니까', 빌 브라이슨은 끊임없이 집으로 돌아갈 명분을 쌓기 위해 도시들을 까대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당장 짐을 싸서 유럽으로, 아니 어떤 다른 곳으로라도 떠나고 싶다. '나를 부르는 숲'이 철없는 아빠가 숲으로 가고 싶게 만들었다면, 이 책은 다시 철없는 아빠가 전세금이라도 빼서 유럽으로 고고씽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떠오르는 책이 하나 있었는데, 고종석씨의 '도시의 기억'이다. 여행기이지만 전혀 실용적이지 않다는 점에서는 두 책이 닮았고, 도시에 침잠하여(이 말은 빌 브라이슨의 어투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도시 자체를 사유한다는 점에서도 일맥상통하지만, 두 책은 참 많이 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둘 다 '매우' 좋다.
마지막으로, 스티븐 카츠하고는 어떤 사이야?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떠오르는 책이 하나 있었는데, 고종석씨의 '도시의 기억'이다. 여행기이지만 전혀 실용적이지 않다는 점에서는 두 책이 닮았고, 도시에 침잠하여(이 말은 빌 브라이슨의 어투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도시 자체를 사유한다는 점에서도 일맥상통하지만, 두 책은 참 많이 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둘 다 '매우' 좋다.
마지막으로, 스티븐 카츠하고는 어떤 사이야?
이 책은 <창비주간논평>에 수록된 칼럼들 중에서 '두고두고 읽을 만한 가치와 글맛이 있는 56편의 글을 정선'해서 묶은 것이다. 56편의 비평들을 한국정치와 민주주의/신자유주의와 한국경제/세계체제, 동아시아 그리고 한반도/교육과 사회/생태와 여성/문학과 문화, 6개의 섹션으로 나눠 정리하였다. 2년간의 한국사회의 논쟁거리들을 한 번에 요약할 수 있는 기특한 책이라고 할 수 있고, (모모일보들의 사설에 비하면야) 논술 실력을 쌓는데 무척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점점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눈이 흐려지는 것 같아서, (언제나 그러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을 빌려서라도 사회의 이슈들을 좀 정직하게 바라보고 싶어서 읽어보았다. 그런데, 나는 신문의 사설이나 비평들을 보면, 뭔가 핵심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잘 못 잡겠다. 무엇인가에 대한 비평을 할 줄은 당연히 모르고, 잘 된 비평 마저도 제대로 못 받아들이는 건 아닌가 싶어서 내 지적능력에 실망하게 된다. 갈수록 사람이 한심해지는 것 같다.
점점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눈이 흐려지는 것 같아서, (언제나 그러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을 빌려서라도 사회의 이슈들을 좀 정직하게 바라보고 싶어서 읽어보았다. 그런데, 나는 신문의 사설이나 비평들을 보면, 뭔가 핵심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잘 못 잡겠다. 무엇인가에 대한 비평을 할 줄은 당연히 모르고, 잘 된 비평 마저도 제대로 못 받아들이는 건 아닌가 싶어서 내 지적능력에 실망하게 된다. 갈수록 사람이 한심해지는 것 같다.
때로는 날카로운 필봉으로, 때로는 촌철살인의 비유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젊은' 지성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각자가 자기 인생을 뒤흔든 세 권의 책을 친절한 추천사와 함께 풀어놓고 있습니다. 청년시절 몰래 몰래 읽었던 사회과학 고전부터, 최근의 세태를 반영한 인문교양서까지 그 종류도 다양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뒤흔들지도 모를 '뜨거운' 책들을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 유시민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사마천> 사기열전 | |
| 박노자 | 아쿠카가와 선집, <칼 마르크스> 경제학/철학 수고, 김수영 전집 | |
| 김규항 | 김수영 전집, 신동엽 전집, <안병무> 역사와 해석 | |
| 조 국 | <안토니오 그람시> 그람시의 옥중수고,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존 롤스> 정의론 | |
| 손석춘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칼 마르크스> 자본론, <신동엽> 금강 | |
| 지승호 | <강준만> 인물과 사상, <우석훈/박일권> 88만원 세대,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
| 조효제 |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루쉰> 아Q정전 | |
| 금태섭 | <스콧 터로> 무죄추정,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미셀 폴코> 사형집행관 | |
| 고미숙 | <이진경> 필로세네마, <박지원> 열하일기, 노신전집 | |
| 박은봉 | <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아베 긴야>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박무영>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
YES24에서 흐뭇한 특별 기획을 열었구나. 내가 좋아하는 일군의 작가들도 눈에 띄고,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읽지는 못했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작가들도 있어서 옳타쿠나 싶다. 이 사람들은 무슨 책을 읽었을까 싶었는데, 그런 궁금증도 해소해주고, 그것이 그대로 추천도서 목록에 올라가니 겸사겸사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내(추) 인생을 뒤흔든' 책은 뭐가 있을까? 20대의 10년이라는 시간의 궤적을 훑어 보니, 정말 감사해야할 책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내 삶의 진정성으로 보자면 안타깝게도 그 책들에 의해 '뒤흔들어'지지는 못한 것 같다. 나의 모자란 것들 중, 특히 용기 없음으로 인해서. 하나 아주 확실하게 내 인생을 뒤흔든 책은 '과학원 아이들'이 아닐까. ㅎㅎ 이 책 읽고 KAIST에 오게 되었고, 비록 10년동안 이 곳에서 이 곳이 가르쳐줄 수 없는 것들만 배운 것 같지만, 어쨌든 아직까지는 KAIST의 공식적인 마지막 학위 과정에 있으니 말이다. 흠흠. 쓸데없는 이야기였고, 좋은 책들을 많이 읽자. 이 궁색한 싱크로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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